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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의 11월 25일자 기사인 <[자영업자의 눈물] "벌이는 월급쟁이보다 못한데 준수의무는 기업가 수준">을 읽고 쓴다. 기사의 논조가 아주 위험하다는 생각에서다.
기사의 취지 자체는 이해한다. 각박한 환경 속에서 빡빡하게 살아가는 자영업자들의 고충을 말하는 것일 테니. 그러나 그것이 "지난봄 몇 년 동안 함께 지낸 직원이 법을 악용해 '배신'한 일"이라는 문구마저 합리화할 수는 없다.
기사에 의하면 3년 넘도록 주5일 하루 7시간씩 일한 직원이 법에 근거해 주휴수당 700만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데 기자는 그걸 법의 악용, 나아가 '배신'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시선엔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 법은 노동자가 누릴 최소한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것이고 직원으로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법적절차를 준수한 것뿐이다.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이 법에 기댄 게 어찌 법의 악용이고 배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법을 지키지 않은 건 고용주지 직원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인 한 잘잘못은 명백하다.
기사보다 더한 사례도 수두룩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지금 상황도 그 실례다. 2년 반 넘는 기간 동안 한 달에 사흘만 쉬며 하루에 12~13시간씩 일했지만 주휴수당은 고사하고 퇴직금조차 받지 못했다.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을 통해 문제를 제기했으나 여섯 달이 지난 현재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이러할진대, 이와 같은 현황에서 권리를 빼앗긴 이의 목소리를 통째로 매도하는 논조로 기사를 쓰는 건 매우 곤란하다고 본다. 해당 사건을 냉정히 평하면 거기까지 감안해서 고용량을 설정하지 못한 고용주 자신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거기까지가 법에 규정된 임금이니까. 비판의 대상은 대다수 고용주들이 이를 지키지 않는 그릇된 관행이지 법에 기대서 권리를 되찾고자 한 직원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제값주기 혁명'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우리가 표방하는 자본주의의 정수를 구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노동력을 구매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인심들이 너무 후해서인지 우리네 세상사엔 '덤'이 넘쳐난다. 다들 계약된 시간 이상으로 일하고 계약되지 않은 직무까지 떠맡는다. 열정, 애사심, 서비스정신 따위로 포장해가며. 이런 게 무슨 자본주의인가? 그냥 삥 뜯는 거지.
제값주기 = 제값받기
한데 이 지점에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대목이 있다. 왜 글쓴이인 나는 이를 두고 '제값받기'가 아니라 '제값주기'라고 표현하는 걸까? 노동력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쓴다면 응당 '받기' 쪽이 더 자연스러울 텐데.
이는 우리 안의 이율배반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음원시장을 예로 들어보자. 음원시장이 개판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스트리밍으로 한 곡 들어봐야 원작자에겐 1원도 돌아가지 않는다. 다운로드 역시 큰 차이가 없다. 당연히 부당한 대우이고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면 주저 없이 외면하곤 한다. 심지어 '소비자의 권리'라는 방패 뒤에 숨어 음원유통사 편에 설 때도 잦다. 그러면 더 싸게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까.
어? 가만히 보면 이거 똑같은 행위 아닌가? 우리를 계약된 시간 이상으로 부려먹고 제대로 수당 안 챙겨주는, 그래서 술자리에서마다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아 씹어대는 바로 그 행위를 우리 또한 정확히 따라하고 있는 거다. 누군가의 노동력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드니까. 혹 자기 권익을 찾겠다고 아티스트 측에서 음원을 빼버릴 때면 '돈을 냈는데 음악을 왜 못 듣느냐?'며 온갖 욕설까지 달아둔다. 돈을 받지 못해 그런 걸 두고 돈을 냈다고 말하는 모양새인데 이거 참 친숙한 논리다. 우리의 고용주들도 우리에게 그리 말하니까.
이런 사례가 우리 일상에 산적해 있다. 만 원짜리 책 한 권을 구입할 때조차 택배비가 무료인 걸 이상하게 바라본 적은 없는가? 그게 가능한 건 누군가가 쥐어 짜이기 때문이다. 유통사 측이 말도 안 되는 단가로 후려치고 그 단가에 맞추기 위해 회사는 직원들을 쥐어짠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택배 기사를 더 적게 고용하는 대신 노동 시간과 강도를 올리는 것이다. 거의 살인적인 수준으로. 그러나 우린 그들을 외면한다. 당장 나 자신에겐 이득이기에.
제값을 받고 싶은가? 그러면 제값을 주는 법도 알아야 한다. 제값받기와 제값주기는 결국 동의어인 때문이다. 나 자신이 무심코 권리라고 생각해왔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이었음을 자각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지 못하면 우리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절대로.
'연대의식'은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제값을 주려고 하는 의식 말이다. 사람의 노동력을 제값에 거래하는 제대로 된 자본주의 세상 한 번 만들어볼 수는 없을까? '제값주기 혁명'을 통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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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hyungjin-hong/story_b_62259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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